아이의 사주를 보러와서 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건 대략 세가지 인 것 같다. 자신의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가고 잘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벌지와 결혼은 잘할지, 언제할지와 부모랑 잘 맞는지, 계속 잘 지낼지 등이다. 그런데 필자가 아이사주를 꼭 봐야한다는 이유는 부모의 이 세가지 궁금증에선 빠져 있다.

 

필자가 아이의 사주를 꼭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사주를 봄으로서 자신의 아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열리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이의 부모에게 사주를 들려줄 때마다 부모가 하는 소리가 있다.

 

'아~! 우리 애가 그러는 이유가 그거 였어요?'

 

나는 그 분의 아이를 본적이 없다. 단지 그 아이의 사주만 앞에 두고 말씀을 드릴 뿐이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가 어떤 아이라고 말하면 맞다고 맞장구치고, 그 아이의 행동이 그런 이유가 어떤 것이라고 알려드리면 위와 같은 답을 한다. 물론 자기 아이는 전혀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낳고 키우고 있지만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담 계속되면 수긍을 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자식도 마찬가지다. 매일 보고, 얘기하고, 정을 나누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많을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익숙하고 혈연이라 생기는 끌림이외에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하다. 더구나 배려인자가 있는 사람들은 집에서 하는 행동과 밖에서 하는 행동이 180도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저 사람이 내가 같이 살던 가족이 맞냐고 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그래도 부모인데, 그래도 자식인데, 그래도 형제자매인데 하는 그래도를 이유로 참고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잘 알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를 키움에 있어 부모가 아이한테 이기란 말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는 한편이므로 자신의 편에 대해 제대로 알고 공동의 목표이자 적인 사회를 대상으로 합심해서 싸워 나가야 한다. 사회적응부터 사회진출까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자신의 막연한 기대로만 육아를 진행한다면 중학교 이후엔 손 쓸 수 없는 단계로 흘러가 버린 자녀를 경험하게 된다. 실제 개인상담을 하다보면 중학교 때 이미 탈선의 길로 빠진 자녀를 둔 분들을 가끔 보게 된다. 이럴 경우 필자가 할 수 있는 말은 평범한 또래로 돌아올 대운이 올 때까지 가정과 연결고리만이라고 이어놓은 상태로 기다려보자란 말 뿐이다. 보통 자녀가 탈선의 길로 들어가면 내 자식 아니라고 내치는 아버지들이 많다. 그리고 사실 부모가 성인이전의 자식에게 무조건적으로 해줘야할 의무인 경제적인 지원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되면 유일한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용돈 즉 경제적인 의존이 사라지기 때문에 실제로 부모와 자식의 연결고리도 사라져 버린다. 설마 돈으로 부모와 자식의 연결고리가 지속될까 하는 의심을 하는 분도 있겠지만 항상 말씀드리는 부분이다. 현대사회에서 돈은 피와 같기 때문에 돈줄은 생명줄이고, 그 돈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만 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다. 바꿔 말하면 어떻게 자녀에게 용돈을 주느냐에 따라 자녀의 성장결과가 반전되기도 한다.

 

사람은 사주 구성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필자가 쓴 첫번 째 일반 대중들을 위한 책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는 이러한 사람의 차이를 전해드리는 책이다. 타고난 사주에 따라 그 사람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지를 알려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을 출간 후 유치원선생님과 초등학교선생님들의 이메일을 자주 받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고, 실제로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너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어떤 아이인 줄 아는 것만으로 교육에 도움을 받고 있다면 사주구성에 따른 육아 및 교육방법까지 안다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의 사주를 꼭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방식으로 아이의 사주를 보는 것은 반대다. 기존의 방식이란 위에서 말한 바와같이 아이 사주를 볼 때 관점을 말한다. 이 아이가 커서 뭐가 되고 돈을 얼마나 벌지를 묻지 말고,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어떻게 해야 부모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해야 공부를 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물어라. 아이의 사주를 보면 안된다고 말하거나 안본다는 철학관 운영자들은 아마도 틀리는게 두려워서 이거나 아이의 사주를 본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된다. 7살 아이의 사주를 보고 이 아이가 공부를 잘할거라고 얘기하는 건 철학관의 간판을 내리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 6학년 아이의 사주를 보고 공부를 잘하느냐 마느냐도 마찬가지다. 바로 몇년 후에 현실로 증명될 일을 말했다가 틀리면 요즘같은 인터넷시대에 바로 간판을 내려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 같아도 어설픈 사주공부를 한 상태에서 철학관을 하고 있는 거라면 자신없는 분야는 사주보는게 아니라고 사전에 담을 칠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사주를 보러가면 결정론적으로 묻지 않아야 한다. 그 아이의 자체, 자신이 낳아 놓은 그 자체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어떤 성격이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부모는 그것을 알고 그러한 환경만 조성해주면 된다. 원래 사람을 지 혼자 커는 것이지 누가 키워주는 게 아니다.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렇다. 보도블럭 틈사이 먼지에서도 잘자라나는 잡초와 다를바 없는 한 강인한 생명체이기에 그렇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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