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의 가장 큰 전제는 태어나는 그 순간, 이미 그 사람이 살아갈 길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사람은 사주 생긴 그 모양대로 살아간다는 말이고,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4000년이상 반복되는 시간동안 동일한 사주로 살았던 사람들 삶의 형태를 통계함으로서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 사주명리학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다. 그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노력해서 변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이나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선행, 즉 덕(德)을 쌓아 바꿀 수 있는 후천운 같은 건 없냐는 의문이다. 정말 그렇다면 선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니, 봉사나 기부같은 것도 모두 헛짓이냐고 반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말이다.

 

사주엔 사실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지금까지 다 정해져 있다고 했으면서 무슨 말이냐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사주를 보러 오면 필자가 해드리는 말은 크게 네가지다. 사주팔자와 대운의 흐름이 좋다. 사주팔자와 대운의 흐름이 좋지 않다. 사주팔자는 좋은데 대운의 흐름은 나쁘다. 사주팔자는 안좋은데 대운의 흐름은 좋다. 필자는 '사주명리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분들에게...1'에서 사주 여덟자 원국을 요트에 비유했고, 대운을 항로에 비유했다. 태어나는 순간 내 요트의 크기와 항로가 정해져 있는건 분명하지만, 아직 운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하철은 매일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구간을 운행하지만 타는 손님도 변하고 거기에 따른 이벤트적 요소들도 달리 나타난다. 기본 조건인 시작이 같다고 끝까지 같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런 착각을 하는 이유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엔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그건 행동, 액션이라는 남과 다른 변화를 일으키는 가속도라는 요소다. 

 

같은 자연과학이라고 해도 수학, 화학과 다르게 물리학을 현실적인 학문이라고 하고, 같은 비즈니스 학문이라고 해도 경영학, 회계학과 달리 경제학이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이유는 가속도를 다루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인간의 두뇌는 사고하면서 신체적 숙달과 메모리를 동시에 수행한다. 동일한 조건과 상태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순간순간의 판단과 움직임이 달라지면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오게 되는데, 그 결과만 다른 것이 아니라 두뇌에 누적되는 몸의 숙달과 메모리 양 역시 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몸의 숙달과 뇌에 메모리된 경험치는 다음에 같은 일을 반복할 때의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한번 해본 일을 다시하면 더 빨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간이 가지는 가속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가속도가 달라진다.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50명 정도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 50명은 동일한 조건 하에서 삶을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학교성적도 다를 것이고, 전공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를 것이다. 낳는 아이의 성별이나 수도 다를 것이다. 사는 집의 가격도 다르고 위치도 다를 것이다. 같은 사주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 삶의 가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선택과 액션의 강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선택과 액션의 강도는 아동청소년기엔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고, 청장년기엔 직업과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순간순간 느끼는 만족도는 동일하다. 필자는 PC통신 모임이 활발하던 시절 같은 띠모임을 통해 한날한시에 태어난 사람들의 팀을 100여팀 만나본 적이 있다. 2명에서 9명까지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들을 비교했을 때 확신한 내용은 그 사람들이 가진 현실적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느끼는 만족도는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4명이 같은 시간 대에 태어난 팀이 있었는데, 금속을 다루는 스킬이 있는 일을 업으로 삼을 사주였다. 그 4명 하나하나의 직업은 치과의사, 샷시기술자, 새마을금고, 경리직원이었다. 치과의사와 샷시기술자는 금속을 다른다는 점에서, 새마을금고와 경리직원은 금속을 돈으로 바뀌 다룬다는 점에서 사주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4명 모두 직업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타는 차는 벤츠, 그랜저, 매그너스, 마티즈였다. 버는 돈도 당연히 차이가 나고 타는 차도 차이가 나고 사는 집의 크기도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를 물었을 때 이들은 거의 동일한 삶의 만족도를 가지고 살고 있었다. 본인의 행동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가속도 때문에 삶의 모양은 달라지지만 삶의 만족도는 같은 것이다.

 

그럼 그런 더 잘살기 위한 노력말고 좋은 일을 많이해서 덕을 쌓으려는 노력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하는 노력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또 종교생활을 독실하게 하는 것 역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주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다. 단적으로 말하면 직접적으로 바꾸어 주는 건 없다고 말씀드려야 겠다. 그게 팩트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이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함으로서 본인의 삶의 자세가 바뀌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삶의 자세가 바뀌면 본인의 선택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그것은 본인 삶을 좀 더 가속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내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는 보람을 느끼기 위해 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속시키고 그 가속된 결과로 좋은 일을 더 많이하게 될거란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로 봉사와 기부는 본인의 삶을 더 발전시키게 되는 것이다.

 

봉사와 기부를 활발하게 하는 분들과 대화하면 그게 즐겁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봉사와 기부를 통해 덕을 쌓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신다. 이런 걸 평정심이라고 한다. 평정심...평정심이란 단어는 자기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단어다. 인간은 평정심을 가져야 제대로 판단도 하고, 제대로 공부도 할 수 있으며,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평정심을 얻기위해 다양한 교육도 받고 수련의 과정을 거친다. 종교인들이 하는 수련의 과정도 모두 이 평정심을 갖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봉사와 기부 같은 개인의 덕을 쌓는 행동 평정심을 준다. 이 말은 필자가 위에서 말한 봉사와 기부가 평정심을 갖기위한 별도의 수련과정이 없이도 본인의 삶을 더 발전시키게 될 것이란 점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수 많은 행동은 무의미한 행동과 유의미한 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무의미한 행동은 인생을 가속시키지 못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많고, 유의미한 행동은 인생을 가속시킬 행동일 가능성이 많다. 인생의 격을 높이고 싶다면 유의미한 행동에 집중해야 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싶다면 무의미한 행동에 집중하면 된다. 막살아도 사주대로 사는 것이고 잘살아도 사주대로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살던 자신이 선택하는 삶이란 얘기다. 그렇게 살아놓고는 내 팔자가 왜 이러냐는 얘기만 안하면 제대로 살다가는 것이다. 다 자기 선택이고 자기 탓이란 얘기다. 신세한탄은 지 얼굴에 침뱉기란 말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   동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