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가 외롭고 고독하다.

컨설팅사례보고 2016. 10. 9. 19:17 Posted by 인컨설팅 East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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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판단으로 헤쳐나가야 하는게 인생이다. 그러므로 자식이건 부모건 배우자건 절친한 친구건 혼자 내버려두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나둬야 한다. 필자는 컨설팅을 해드릴 때 이런 취지의 말씀을 자주 드린다. 그럴 때마다 그럼... 부모의 역할, 자식의 역할, 배우자의 역할, 친구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 필요없다는 말인가? 라고들 물어 오신다.

 

인간이 혼자 판단하고 행동할 때...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과연 내가 가는 길이 맞나?'하는 의문을 느끼게 되고 불안하게 된다. 그때... '그래 니가 가는 길이 맞아!'하고 칭찬해 주거나, '아니야 그리가면 안돼!'하고 질책해 주면 더 나은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 가족과 친구의 역할은 구체적인 방법이나 길을 특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칭찬'이나 '질책' 정도이어야 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을 해주고 싶어도 그사람이 아무것도 하지않고 가만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칭찬도 할 수 없다. 인간은 뭐라도 해야 외부와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움직일까? 타인이 무언가를 시켜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움직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의 인간은 본능이 시켜서 움직이거나 움직일 마음이 생겨야 움직인다. 칭찬은 바로 후자의 본인이 움직일 마음이 생겨서 움직일 때 해줘야 비로소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사주를 읽어주는 사람의 역할도 이래야 한다. 내가 내 사주팔자에 있는 일을 하고 살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해주는 사람이 명리학자, 역학자, 역술인이다. 잘하고 있는 부분은 칭찬해주고 아니게 가고 있는 부분은 왜 아닌지,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 알려주는 과정에서 본인의 수긍을 얻어내야 한다. 마음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리 알려줘도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으니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중년의 나이가 넘어서면서 성장보다는 결실을 둘러보고 마무리를 준비해야할 시점이 오면,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같이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평가하면서 자신만의 삶에 대한 철학을 다져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함은 인간이 본래 고독한 혼자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트러블이 발생한다. 그때까지 자신만의 생각과 자신만의 삶을 영위해온지라 자신이 가진 생각이 누구나가 가지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어떤 특정한 생각들이 나만 그렇게 느끼는게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착각을 해버리는 것이다. 자신만의 개똥철학임에도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적인 철학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 시기부터 인간은 고독을 고독으로 즐기지 못하고 고립되기 시작한다. 나와 생각이 같으면 오케이고 아니면 적으로 여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자가 사주이론의 핵심임 인간의 대운에 따른 인간의 반응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고립을 통해 인간은 태초의 인간이 느끼는 고독과는 차원이 다른 고립에 의한 고독을 느끼게 된다. 이 이후의 과정은 지금까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라도 자신과 생각이 다른 걸 느낄 때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어제 만난 잘 모르는 사람과는 친할 수 있지만 오래 가까이 지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그게 통하지 않으면 점점 멀어지게 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가족과 친구, 지인 모두를 개선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혹시 이럴 때 정치적 이념의 대립이나 종교의 대립이 함께 한다면 그 고립은 깨지기 힘든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럼 이러한 고립을 깨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자각 밖에 없다. 스스로 사고를 유연하게하고 받아들이는 노력, 이해하는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이게 쉽지 않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한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유연한 사고를 갖게 해야하고, 특히 자신의 자식에게 유연함을 보여줘서 그 자식이 나이들면서 그 유연함을 배우게 해야한다. 꼰대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고리타분한 선생님이나 기성세대를 말하는 은어라고 나와 있다. 근데 사실은 극복이 안되는 아버지를 부르는 은어다. 어찌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는가? 하고 화가 나는 분이 있다면 꼰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필자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이 꼰대가 되지 말자는 취지다. 유연해지자, 그럼 원래가 외롭고 고독한 인간이라도 그 고독은 원할 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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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ngee 2016.10.10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날에 맞추어 꼰대의 정의를 이렇게 확실히 해주시다니요... ㅎㅎ... 편승하자면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가 혼자있음의 고통은 외로움이고 혼자있음의 즐거움은 고독이라더군요.. 고독을 원할때만 느낄 수 있다는게 참 마음에 드네요... 유연해져야겠어요..^^
    보편성이라는 잣대가 가지는 함정이 많죠.. 너도 나도 보편적이라고 하니까요... 다름을 인정하는게 참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저와 다른 사람을 보면.. 특히 정치적으로...미워요.. 욱욱 거려져요... 아직은 꼰대인가봐요.. ㅎㅎ

  2. 모범생 2016.10.18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자체로 완전히 누군가에게 이해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고독이란것도 받아들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