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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6.25 명리학 공부의 어려움은 뜻에 너무 치우치기 때문이다.

원래 정리해서 올릴 글이 있어서 블로그에 접속했다가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올라와 있어 이 글의 답변으로 오늘 글은 대체해야 할 것 같다.


방명록에 올라온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분은 정말 열심히 명리학을 공부하시려는 분으로 보이고 이런 노력이라면 이론적인 완성은 머지않으셨다고 본다. 이렇게 파고들면 사실 명리학은 이론 적으로는 별 공부할 게 없는 학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필자가 쓴 글은 아래 두 가지다. 한 가지는 필자가 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고 또 한 가지는 필자의 책 원샷원킬에 있는 내용이다. 필자가 기己일간에 대한 언급을 한 게 서로 상충되지 않느냐란 질문이시다. 먼저 한번 읽어들 보시기 바란다.

 

 

 

분명 앞의 글에는 '보통 자신을 위해 산다.'라고 적었고, 뒤의 글에는 자기보다 남을 챙기는 마음이 앞선다고 썼다. 필자가 잘못 쓴 것일까? 아니면 이랬다 저랬다 한 것일까? 아니면 두 가지 말이 모두 맞는 말일까? 그것을 알려면 일단 기토己土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기토己土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 신信에 해당하는 인자로 인간의 신뢰, 믿음을 중시하는 인자이고, 목화木火 양陽과 금수金水 음陰에 치우치지 않는 중심, 중용을 뜻하는 인자이다. 인간의 신뢰와 믿음을 중시하니 그 바탕은 분명 인간을 위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기토인 분들을 실제 관찰해보면 사주팔자에 구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실제로 다정다감하고 나를 해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런데 막상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하면.. 친분 정도에 따라서 정도는 다를 순 있지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은 중간자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굳이 그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방관자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어쨌든 간에 외적인 부분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중시하는 방향의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두고 '보통 자신을 위해 산다'라고 말한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관찰할 수도 있는데, 기일간인 10대를 보면 다정다감한 면이 아주 강하지만 40대의 기일간을 보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것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갔다고  수도 있다. 그만큼 기일간은 생각과 행동을 달리한다. 다르게 말하면 그냥 생각으로 모든   해버린다고도   있고 말이다. 원샷원킬의 내용을 처음부터 읽으면 필자가 말한 경험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다정다감한 면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의 일에 휘말려 곤란한 일이 자주 생기게 되는데..'  대목이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마음은 있지만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게 되면서 자기 자신의 삶을  중시한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원샷원킬은 사람 자체를 파악하기 위한 책이다. 그래서 운 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현상적으로 보이는 내용만 서술한 책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 자체에 대한 이해는 가능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나와있지 않은 책이다. 그럼 고려할 필요없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아니다. 아주 전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유는 사람들이 이 책에서 자신을 찾을 때.. 그래 난 이런 사람이었어..가 되려면 결과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의 관찰처럼 일간별로 그들의 특성을 관찰하고 사주팔자의 구조와 인생의 흐름에 따라서 어떤 부분이 간과되고 어떤 부분이 강화되는지 관찰하는 것도 사주 감정의 정확도를 높일  있는 방법이다.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고전이나 자신이 공부하는 책에 나와 있는 문장 하나가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직접적으로 보이는 의미만을 가지고 암기하고 적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필자는 그런 사람을 이름하여 '초짜'라고 부른다. 사주의 모든 해석은 운의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 운의 흐름을 고려할 때도 지나간 운을 경험 인자로 두고 그런 경험 하에서 현재 운, 미래 운이 어떻게 적용될지를 고려해야 한다. '누가  했대!'가 아니라 '누가 언제  했대!' = '누가 어느 대운에, 세운에 뭐 했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한가지로 특정되는 무조건 어떻다..라는 해석은 자리를 잃을 수 밖에 없다. 항상 어떤 환경이냐를 봐야하고,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 그러니 사주명리학의 바이블 같은 책이라고 해도 그 책의 해석이 어떻게 달라져야할지 생각하는 연습이 중요하고 그 생각이 명리학의 베이직에 부합하는가를 따지는 노력이 중요하다. 필자가 이렇게 떠들 필요없이 그런 책 대로 해석하면 사주가 안맞다. 엉터리 해석이 되어버린다. 그 엉터리 해석이 그 책이 잘못되어서가 아닌 공부하는 사람.. 자신의 마인드 문제란 점을 캐치해야 제대로된 명리학 공부가 가능해진다.

 

 

 

인컨설팅    이동헌